서구 문명의 첫 페이지는 그리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 세계문명사의
일반적 상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명의 전환점을 마련한 종이며 나침반이며 화약이며 이 모든 것이
비유럽문화권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헬라 문명은 여전히 서구 문명,
곧 세계를 지배한 문명의 시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식일 뿐 서구 문명의 오리지널리티가 모두
그리스로부터 출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우선 에게해를 둘러싸고 가장 왼편에
그리스가 위치하며 동쪽의 근동지방은 메소포다미아와 페니키아, 그리고
남쪽은 이집트가 있습니다.
즉 에게해는 그리스, 메소포다미아 제국(지금의 터어키), 페니키아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그리고 이집트(현재도 이집트)라는 사각형으로
포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는 무려 6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입니다.
어떤 섬나라 문명도 그러하듯 그리스 문명도 독창적인 문명이 아니라
에게해의 연안 국가들과의 교역과 문물교환 가운데서 탄생합니다.
에게해의 제국들 가운데서도 그리스의 헬레니즘의 형성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나라는 페니키아였습니다.
오늘날 모든 젊은이들이 필독서로서 권장되는 그리스 신화는 또한
그리스 문명의 최 정점에 버티고 있습니다.
로마신화의 모태였으며 로마의 건국 신화를 이끌고 있는 그리스 신화..
그러나 이 위대한 크래식은 혈통적으로 한 번도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그리스 토종의 신화가 아닙니다.
1987년 마틴 버날(Martin Bernal)에 의해 쓰여진 “흑인 아테나(Black Athena)
라는 책은 그리스 신화의 저작권이 그리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논증합니다.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신화는 독자적으로 성립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
이집트와 근동, 중동 국가의 신화와 문명을 모방하거나 그를 모태로 성립하는
이주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과격하게도 그리스 문명의 독자성에 대한 유럽문명의 우월주의는
19세기에 팽배했던 백인, 유럽우월주의에 의해 과장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마틴 버날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그리스 신화는 주인공 제우스와 페니키아의
공주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하여 페니키아와의 연관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냅니다.
내용을 보면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인 에우로파는 제우스의 꾐에 빠져
동침을 하지만 크레타 섬에서 버림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제우스는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파(Europa)를 사모하여 납치극을
벌려 그녀와 동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알려진 미노스왕은 죽어서 하계(세상)의
판관이 되었다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를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 신화의 내용은 미노아문명이 소아시아에서 발원하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화의 페니키아공주 에우로파(Europa)의 이름을 따서
유럽(Europe)이란 이름이 탄생합니다.
그리스의 크레타섬은 유럽에서 성립한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져 있고
크레타 문명은 그 이전의 원초 문명이 발생한 에게해 동쪽지역에서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페니키아가 그리스 문명에 끼친 영향은 비단 신화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페니키아 알파벳은 그리스 문자, 즉 헬라어가 되었고 로마에 이르러서는
로마 알파벳이 되어 현재 우리가 영어로 기록하는 로마자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 로마 문명에 가리워져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문명사학자들은 페니키아문명을
독립시켜서 이집트, 에게, 페니키아 이렇게 지중해의 3대문명으로 분류하기도 할
정도로 페니키아 문명은 지역적으로 광범위했으며 문명사적인 업적도 탁월한
제국이었던 것입니다.
고대 서양의 예술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양의 많은 예술적인 부분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헬레니즘은 무려 3000년의 세월의 거쳐 오늘날 바티칸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적으로, 조각으로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들 앞에 생생히
현시되어 되 살아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페니키아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는 페니키아에게서 신화와 문자와 항해술과 그림과 조각기법을 배워서
그리스 신화를 만들고 헬레니즘이란 고유브랜드를 붙혀서 세계 문명사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는 섬나라였고 그리스의 헬레니즘이 주변국 페니키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우리 한국도 중국의 문명의 영향을 받았고 또 그 문명이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 문명의 독창성이 부인되지 않는 것처럼 헬레니즘도
그 문명사적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헬레니즘 속에 숨어있는 치명적인 범신론이 페니키아에서 들어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헬레니즘을 인본주의로 부를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는 것.
이 문제가 옛사랑이 헬레니즘과 페니키아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옛사랑이 머무는 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가의 막간:유럽견문록(7)-감추어진 페니키아- (0) | 2010.12.17 |
---|---|
연가의 막간:유럽견문록(6)-범신론과 페니키아_ (0) | 2010.12.17 |
연가의 막간:유럽견문록(4)-헬레니즘은 인본주의인가- (0) | 2010.12.11 |
연가의 막간:유럽견문록(3)-헬레니즘의 기원을 찾아서- (0) | 2010.12.08 |
연가의 막간: 유럽견문록(2)-간단하지 않은 문제- (0) | 201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