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이 머무는 뜰

머나먼 연가(36)-신은 없는 것이다.

뜰에봄 2011. 1. 11. 13:02

뮤트는 병이라는 막힌 벽에 갇혀 세상을 보는 눈도 철저하게 염세적으로 경도되었고 마침내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그 자신이 죽음 앞에서 보였던 나약하고 옹졸한 태도에도 크게 실망한다.

뮤트는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 나는 더 부조리하다!”고 외치며 절망한다.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 나는 더 부조리하다”는 말은 뮤트의 개인적 탄식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말은 상당부분 진리를 포함한다.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 인간은 더 부조리하다”라는 명제는 언제든지 성립할 수 있는 진리일지 모른다.

 

이 세상은 허술했다.

문제가 있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해결할 힘이 없다.

학문은 더 허술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학문으로 이 세상은 더 현명해지지도 더 편리해 지지도 않았다.

학문은 진리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설(假說)을 양산하고 있었다.

의학은 제한적인 병만 고칠 뿐이고 과학은 늘 오감으로 인지 가능한 것만 학문의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과학이 해결한 공적이나 성과보다도 풀어야 할 숙제가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인간의 지식은 문제의 예방과 해결보다는 문제가 발생한 뒤의 원인규명에 힘겨워하고 있고 늘 사후적(事後的)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지식은 문제 해결이라는 수입과 풀어야 할 과제라는 지출 사이에서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않은 빚쟁이에 불과했다.

 

그녀는 뮤트에게 헌신적이었지만 뮤트는 그녀의 위로나 격려조차 간섭이나 감시로 여기고 있었다.

뮤트는 그녀의 헌신에 대해 엉뚱하게 나이차를 거론하거나 어디 결혼이라도 하라는 등 냉정하고 상처 주는 언행으로 응대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갑자기 뮤트는 그녀를 어린 사람으로 취급했으며 타인화 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무위의 시간속에 가라앉아 있던 어느 날. 미국으로부터 소포가 날아왔다.

그것은 바이블, 즉 성경이었다.

그녀가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성경은 한글 성경이 아니라 영어와 한글이 같이 수록된 한영성경이었다.

당시의 뮤트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혐신(嫌神)론자에 가까웠다.

즉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신에 대한 숭배자체를 혐오했다.

 

뮤트는 이 세상에 신이 없다는 증거들을 수천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신들은 하나같이 인생사에 간섭하는 신들이다.

그리고 몇 몇 신들은 사후세계까지 간섭하고 있었다.

뮤트는 어린 시절 몇 번 신에 대해 고민했으나 숙고(?)한 끝에 신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귀신의 이야기도 어린 시절에는 혹시 있을 지도 모른다고 반신반의했으나 나중에는 그것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반드시 윤리적으로 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뮤트는 이 세상에서 윤리가 필요한 이유는 사후세계에서 선한 행동의 보상 때문이 아니라 현재 사회의 유지나 질서를 위해서 필요한 소프트 웨어이기 때문으로 보고 있었다.

 

세계 전쟁사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에 신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 참혹하고 극단적 전쟁의 순간에 신은 아무데도 없었다.

수많은 크리스쳔들이 처형되며 외치는 그 기도의 순간에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으셨다. 

전쟁이 선이냐 악이냐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었다.

이차세계대전 때 연합군과 독일군이 부딪혔을 때 양쪽의 많은 젊은이들이 각자 성경을 가슴에 품고 서로 싸웠다.

그들은 매일 기도하였으나 다음 날이 되면 한쪽의 기도는 받아들여져 살았고 한쪽의 기도는 무시되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죽음은 그들이 얼마나 선하게 살았느냐로 결정되고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무원칙적이었으며 기도에 대한 응답도 정해진 기준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신은 없는 것이다.

 

그녀는 크리스천이었지만 한 번도 뮤트에게 신앙을 가져보란 말은 하지 않았다.

뮤트의 완강한 태도에서 그녀는 섯불리 그런 말을 꺼냈다는 역효과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씩 뮤트가 우리의 관계가 과연 기독교적인가라고 역설적으로 물으며 기독교인들의 상대적 윤리관을 냉소적으로 대한 것이 그녀로 하여금 뮤트에 대한 신앙설득을 포기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여기 뮤트의 눈 앞에 기독교의 바이블이 놓여 져 있었다.

성경 속에는 편지 한 장과 표지 부분에 그녀가 추천하는 성경 구절이 들어 있었다.

그 편지는 지금은 잃어버리고 없다.

대충의 내용은 현재의 상황을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고 느긋하게 생각하라는 내용이었다.

사회 복귀 그런 것도 다 때가 되면 이루어 질 것이므로 지금은 우리의 사랑이나 충실하라는 좀 애교스럽고 코믹한 내용이었다.

그녀가 편지를 밝고 유머러스하게 쓴 것은 어쩌면 이 무신론자 뮤트가 저어하는 성경을 받을 때의 분위기를 심각하게 하지 않게 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표지에서는 그녀가 추천한 성경 구절로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시편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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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트님과 저 사이에 존재하는

나이의 차이

뮤트님 백열다섯살 때

환타쥐는 백살..

거기서 거기죠.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얼마나 떨어져 있겠습니까.

미국 한국이 만리이며

서울 부산이 천리지만

거기서 거기죠.

 

달과 별사이에 비하면

우린 너무 가까이 사는겁니다.

천년 나무 옆에사는 백년나무에 비하면

우린 너무 같은 또래입니다..

 

뮤트님에게 깍듯이 말 높이는 것도

힘들공..

어이..뮤트!!

우리 같은 또래 끼리 걍 말 놓고 지냅시다요.

우헤헤헤헤...

 

도망가자..(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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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채찍으로 길들이지 않고

시간으로 길들입니다.

 

시간은 저와 뮤트님을 길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저와 뮤트님은 시간과 겨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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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하신다면서요.

어서 회복되셔서

바다로 냉큼 달려가셔야 할테인데... ^^

 

바다 풍경을 시리즈로 부쳐드리니 

그냥 눈으로 구경하시와요.

시간은 벌써 오후 6시입니다...

 

오늘 뭐 했더라...

대장금이 비됴 조금 보다가 ..ㅎㅎ 시간 내서 컴앞에 앉았습니다..

 

문득...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푸른빛 바다와 하얀색의 파도가 보이는 이런 곳에서

며칠간 가서 푹 쉬었으면 좋겠네요.

 

뮤트님

힘껏 쉬세요. ^^*

 

하트가 편지지 여기저기 떠다니니..

그것으로 사랑한단 말을 대신 할랍니다.

사랑한단 말 생략해도 되겠죠?

 

사랑해요..

란 말은 생략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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