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이 머무는 뜰

머나먼 연가(34)-탈옥을 결심하다-

뜰에봄 2011. 1. 8. 01:00

 

그녀는 매일 편지를 보내며 뮤트의 회복을 성원했지만 뮤트는 좀처럼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엄습한 이 암울한 운명의 실체에 대해 끝없이 사유하며 원인 미상의 병에 대해

회복할 방법을 혼자 이리 저리 궁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병의 사례가 없는 지, 이런 병이 왜 뮤트 혼자에게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다.  

뮤트가 이 문제를 냉정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그리고 논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자 애를 쓰면 쓸 수록 그의 눈에 자꾸 이상한 또 다른 세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번민과 고늬에 휩싸인 채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차츰차츰 뮤트는 자신이 이 세상을 오해한 채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투병하면서 일찌기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한 절망적 상황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 겪는 진퇴양난의 체험이었다.

뮤트의 눈은 자신의 병을 넘어서 차츰 이 세상 전체의 어두움과 불행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살았던 세계는 밝은 빛의 세계였다.

그곳은 성장과 출세와 변화와 능동과 성취와 긍정의 세계였다.

그 곳은 원하면 이룰 수 있는 세계였고 실패하면 재기할 수 있는 세계였고 병이 들면 회복하면

되는 세계였다.

그 곳은 선택이 가능한 세계였으며 또 자유의지로서 세상에 대한 자기표현이 가능한 세계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뮤트가 새롭게 직면하고 있는 세계는 어둠의 세계였다.

그곳은 정체되어 있고 고착되어 있고 피동적이며 실패와 부정의 세계였다.

이 어두움의 세계에서는 원한다고 되는 법이 없으며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안 되는 곳,

그리고 병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며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 그러한 세계였다.

그곳은 어두운 운명에 대해 자유 의지라는 선택권은 전혀 없는 사방이 막힌 세계였다.

 

그곳은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 감옥은 반드시 신체를 강제로 억류하지 않고서도, 그리고 벽으로 둘러싸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사람을 구금할 수 있는 그런 감옥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질병 뿐 만아니라 빈곤과 기아와 차별과 압제와 핍박이란 감옥이 모든 인간을

고난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우리의 삶도, 역사마저도 빛보다는 어두움이, 행복보다는 고난이 훨씬 많이 지배하고 있음을 뮤트는

통절히 깨닫기 시작한다.

 

뮤트가 빛의 세계에 살고 있을 때 얼핏 얼핏 그 반대편의 세계에 대해 풍문으로 듣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10억에 달하는 기아적 상황의 절대 빈곤인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도 국민 소득이 선진국의 문턱이라고 하면서도 점심을 못 먹는 결식아동의

수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민족 간의 분쟁에서 수 천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풍문도 있었다.

전에는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에 의한 잔인한 인간 학살 장면들이 보도되었다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데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속속

감염되어 죽었으나 어느 날 그 바이러스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또 스스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조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의해 폐사하고 사람마저 병들게 했다.

소는 광우병으로 쓰러져 갔으며 돼지나 다른 가축은 구제역이란 병으로 수십만 마리씩 산채로

매장되고 있었다.

 

뮤트는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매년 몇 만 명의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매년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북한 뿐 만 아니라 이 온 세상은 지진과 화재와 가뭄과 홍수, 그리고 폭설, 태풍의

재해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뮤트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그러한 암흑과 어둠의 이야기들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으며 이런 암흑과 고난이 뮤트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뮤트는 그의 이런 모든 사고와 판단이 모두 이성적이며 논리적 사유의 결과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중증의 우울증에 걸리고 있었고 이러한 한 쪽으로만 경도된 생각들도 병적 증상의

일부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뮤트는 병의 감옥을 탈출해 보았자그 외곽에 또 다른 감옥들이 둘러싸여 있으며 병의 회복도 결국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기 시작했다.

뮤트는 이 절망적인 상황이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드디어 실존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이 감옥을 탈출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중첩된 감옥에 살고 있다고 느낀 순간, 이 병은 회복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순간, 그리고 탈출구는

아무데도 없다고 느낀 순간 뮤트는 드디어  이 감옥을 벗어나 이 고난을 단숨에 해결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결행의 시기와 방법을 저울질 하기 시작한 것이다. 

 

뮤트의 입에서 어느 날, 어느 순간 자살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경악했다.

그녀는 뮤트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 직감했다. 

그녀는 뮤트를 위해 늘 규칙적으로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그녀의 입에서 마귀 어쩌구 하는 말을 처음 들었다.

대적기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로 부터의 편지가 폭주했다.

하루에 두 세통의 편지가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녀는 자신의 누드로서 뮤트의 프로이드적 에너지를 복원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전의 사진에서는 그녀의 입가에 항상 부끄러운 미소가 늘 힐끗 힐끗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늘 눈을 아래로 깔고 있는 그 모습이 고혹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것이 변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정면을 향해 있었고 불안했으며 미소는 사라졌다.  

누드는 화려하고 더 야했으나 그녀의 표정은 더 어두워지고 더 창백해 지고 있었다.

 

뮤트는 그 표정이 싫었다.

한 때는 그렇게 구하고자 했던 그녀의 누드 사진을 이젠 아이러니하게도 뮤트쪽에서 

거부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그녀는 사진이 거부당하자 더욱 편지에 매달렸다.

그녀의 편지는 쾌활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그것은 뮤트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위장된 노력이었을 뿐, 그 내면은 탄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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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다에 다녀 오셨다니 몸상태가 훨씬 좋아졌으리라 믿습니다.

뮤트님은 바다의 싸나이자나요.

바다의 왕자..^^*

 

새벽에 깨서 다시 누웠는데 마침 가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를 듣고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 뮤트님이였네요... ^^

전화로도...메신저로도... 늘 아쉬운 것 같고

해도 해도 모자라는 게 우리의 대화가 아닌가 해요..

 

요즘은 계속 심란했습니다...

뮤트님 입에서 그런 극단적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

 

하루 이틀 정도 제가 기쁨에 젖을만하면

뮤트님은 또 술마시고...힘들어하고..

뮤트님은 부인하시지만 지금 그 병 우울증 맞아요.

제 주위에서 많이 보는 증상이라 제가 잘 안다구요.

그 병 혼자서는 치료가 힘듭니다.

병원에 가시라는데 왜 말을 안 듣나요.

그런 증상으로 병원에 가는 거

그거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아닙니다.

여기 미국은 그런 증상으로 병원에 가는것은 상식...

그거 방치하면 것잡을 수 없이 됩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최소한 전화통화는 오래할 수 있었을 텐데..

뮤트님이 힘들 때 제가 위로도 적절한 대화상대도 못돼드리는군요.

 

내일도 바다로 산보가세요.

술은 다시는 마시지 마세요.

그리고 힘들 때는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스트레스나 분노가 지금 뮤트님에겐 가장 나쁜 거랍니다.

어디 풀 데가 없으면 제게 푸세요..

제 상황이나 사정은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제 사랑..

이 지치지도 피곤하지도 않는

제 사랑에 기대어 보세요.

 

뮤트..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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