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뜰

고향 2 ㅡ집, 추억이 어린.....

뜰에봄 2011. 5. 2. 09:09

 

 

 동생 차를 탄 김에 고향집 한번 들러보자 했는데 우선 새로 돌담을 쌓은 길가 밭으로 향했다.

우리 엄마가 다니던 교회인데 엄마가 예배를 마치고 나오실 것만 같다.

 

 

 

미나리꽝과 정구지와 도라지를 심던 밭이 한데 합쳐져 있고.돌담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다.

길가에 있다보니 돌담마을 정비 혜택을 본 모양이다.

동생이 가죽나무를 심어 놓았단다.

 

 

 

 

밭 한 켠엔 애기똥풀이 소담스럽다.

애기들은 노랑똥을 한 무더기 싸 놓고  다 어디로 갔으까?

 

 

 

 교회 밑, 농협창고가 있는 사잇길로 가면 내 고향집이 나온다.

엄마가 계실 때는 저 창고길로 접어 들면 드디어 집에 다 왔구나, 싶어 마음이 푹  놓였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말문이 칵 막혔다.

담벼락에 황매화, 담밑에 옥매화 , 연자매 뒤엔 라일락과 모란이 피었으리라 기대하고 갔는데 사라진 꽃밭 너머에

웬 컨테어너 박스가 버티고 있었다.

 

 

 

이 사진은 5 년 전 4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지금은 연자맷돌도 한쪽으로 치워지고, 옥매화, 앵두나무, 모란이 사라지고 없다.

 

 

 

 

 오른쪽에 보이는 목련도 가지를 다 잘라 낸 것 같다. 그리고 우물가에 오십 년은 족히 된 향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시골집을 세 줬더니 나가지도 않으려 하고, 주인은 추자 하나도 손 못 대게 한다더니

참 나...무슨 배짱으로 주인 허락도 없이 나무를 잘라내는지 모르겠다. 정말 속이 상하다 못해 화가 난다.

일하러 나갔는지 세 든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엄마가  이웃에 대구에서 이사 온 사람집에 단풍나무 분재를 주고 바꾸셨다는 영산홍도

신경을 안쓰고 내버려둬서인지 짜부러진 채  꽃을 피우고 있다.

 

 

 

 

그래도 우물 가에 앵두나무는 기세가 좋은 듯하다.

앵두꽃이 필 때도, 앵두가 빨갛게 열릴 때도 볼만한데  엄마는 그 이쁜 것이 아까워서 혼자 못 놔 둔다고 어딜 가질 못하셨다.

 

 

 

연자맷돌이 목련나무 아래에 놓여 있다.

세 든 사람이 블도저 일을 한다더니만 이런 거 옮기는 건 일도 아닌 모양이다.

 

 

 

엄마가 계셨으면 필시 저 지심이 저렇게 자라도록 놔 두지 않으셨으리라.

 

 

 

 

감나무 순이 돋아 나오는 모습이 예쁘다.

 

 

 

 엄마는 이 밭에 늘 도라지를 심으셨다.   그러니까 도라지 꽃밭이었다.

꽃을 워낙 좋아하신 엄마라 도라지꽃 필 때를 생각해서 다른 채소는 뒷전으로 미루셨을것이다.

 

 

 

집 뒷 담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보리밥 (보리수)나무인데 보리밥이 많이 열릴 때는 몇 바케스도 딴다.

잎이 아직 다 나지 않아서 그런데 잎 뒤가 흰 빛깔이 보리밥 나무가 바람에 일렁일 땐 은사시나무처럼 멋지다.

 

 

 

우리가 시외변소라고 불렀던 화장실엔 담쟁이 넝쿨이 여전하다.

'

 

 

변소깐 둘레엔  별꽃이  무성하고...

        

 

 

담을 뒤덮던 황매화가 어찌 이리 빈약한지 모르겠다.

이것도 자르고 몇 가닥 남은데서 뻗친 가지인 것 같다.

 

 

 

 

윗 집, 동기아지매 집엔 꽃들만이 마당을 지키고 있다.

 

 

 땅 한 뼘도 놀리지 않던 동기아지매가 돌아가신 집 마당은 마치 페허처럼 변해 있고 누구 차인지 차만 한 대 주차되어 있다.

 

 

 

 

 

 

 바로 앞집을 들여다 봤더니 아가배나무가 꽃이 절정에 이르렀고. 집은 불에 그을린 채로 흉물스럼 모습이다.

앞집 할매 계실 땐 여든 넘은 연세에도 마당에 붙은 밭에 고추농사를 지어 수십 근씩 따곤 했다는데 어찌 이리 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여태 꽃이 이렇게 많이 달린 나무는 처음 봤다.

빈 집에 홀로 피었다 지는 꽃이 아깝다.

 

 

 

 

 

 

 

 

 

 

 옛날에 이 우물물을 길어 밥도 하고, 상추도 씻고, 한여름엔 등목도  하고 고추밭에 물도 주던 정경들이 눈에 선하다


 

 

뚜껑을 열어 보니 물은 예전과 다름없이 고여있건만....이젠 쓰임새를 잃었네.

 

 

 

아쉬워서 앞집에서 다시한번 우리집쪽을 향해 셔터를 눌러보았다.

 

 

      

 

다시 학교로 와서 관중석 옆을 돌아 학교 사택을 들여다 보았다.

옛날에는 교장선생님 사택이었는데 삽같은 연장들이 가지런한 걸로 보아 학교를 돌보는 분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맨 앞에 수북이 나 있는 꿀풀을 보고 반가워서 몇 개 따서 빨아 보았다.

빨면 단물이 나오는 재미에 어릴 적에 저 꿀풀꽃만 보이면 아이들이 너 나없이 달라들어 꽃을 따는 바람에

저 꿀풀꽃이 남아나지 않았다. 저 애들은 이렇듯 온전하게 필 수 있어 행복할까?

 

마당에 꽃잔디가 채전밭의 경계로 심겨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제주 형님 집이다. 안 계셔서 담 너머로 들여다 본 풍경이다.

곡안에 학교를 들이는 일에 앞장 서신  제주오라버님은 오랫동안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다.

제주 형님은 제주도가 고향이시고. 옛날에 고등교육까지 받으신 신여성이셨던지라 동네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집도 내 어릴 때부터 저런 모습이었다, 농촌의 마당이라면 타작하고. 고추 널고, 깨 털고, 닭모이를 흩뿌려 주는 곳으로만

여겼는데 까만 자갈돌이 깔려있고, 온통 나무와 화초로 메워진 제주형님 집은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살고 싶은 집,

소위 로망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제주 오라버님께선 집에서는 늘 한복을 입으셨는데 여름에 모시나 안동포같은 걸로 지은

한복을 입으시고 특유의 꼿꼿한 자세로 한 손에 부채를 펼쳐 드신 모습은 아무도 범접 못할만큼 고고한 데가 있었다.

 

 

 

 

 대문에서 집 모퉁이를 돌아가니 담이 허물어져 있어 집 마당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는 어느 해 저 아랫채를 빌려 누에를 친 적이 있다.

제주 형님이 계시면 반가워하실텐데 안 계서서 섭섭하다. 올해로 아흔 한 살로 우리 엄마와 동갑이시지 싶은데

아직도 건강하셔서 주일이라 교회에 가신 모양이다.

 

 

 

 

 

 

 

제주 형님집을  나와 해경 오라버님을 뵙고 싶어 뒷길로 나왔다.

울퉁불퉁하던 뒷길도 아스팔트로 포장이 다 되어 있다.

 

 

 

양목할배가 하시던 도가를 매산댁 윤근씨가 맡아서 했는데 지금은 빈 단지만 남아있다.

 

 

 

어릴 적에 양은주전자를 들도 술심부름을 꽤나 다녔었다.

어떨 땐 술지개미를 얻어 집에서 사카린을 타서 먹던 기억도 있다.

 

 

 

사랑채에서 양목할배 기침 소리가 날 것만 같은데 ...이 집 역시 이젠 퇴락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버지께서는 저녁마다 양목할배 사랑으로 마실을 가셨다.

집에 뭔 별식이라도 하게 되면 제일먼저 양목할배를 챙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