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봄맞이를 보고 고향집에 잠깐 들여다보고 다시 학교 운동장에 왔더니 전통혼례식이 재현되고 있었다.
최진태 선배가 주선했는데 '도산예절' 에서 주관했다고 한다.
기왕에 평소에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사는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맀으면 더 뜻깊은 자리였을텐데
그런 사람이 없더라네.
그리고 모델도 아무도 서지 않으려고 해서 대구에서 섭외 해 왔다고 한다.
우리 큰 언니 집에서 혼례를 올리던 생각이 난다.
진작에 식순을 보고 처음부터 보는 건데 ...마음이 바빠 급히 셔터를 눌러대었다.
닭 한 마리가 푸드득 거리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포 입고 갓 쓴 진태 선배 모습이 넘 멋지다.
새삼 우리 옷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내 고향 초입엔 길 양쪽으로 솔밭이 있다.
성안이라고 부르는데 홍천뢰 장군께서 성을 쌓고 의병을 훈련시킨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생기라곤 없어 보이던 소나무가 어쩐 일인지 한결 싱싱해 보인다.
처음부터 심어진 소나무가 다 자랐으면 더 빽빽했을텐데 내가 알기로도 눈이 많이 와서 부러진 소나무도 제법 된다.
이 소나무에 아이들이 제일 많이 올라갔지 싶다. 여자인 나도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남자 애들은 저 가파른 나무에도 잘 올라갔다. 그러니까 성안에 있는 나무들은 우리들의 친구였다.
홍천뢰 장군 비. ㅡ 비석의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이다.
홍천뢰 할배는 임진왜란때 의병을 이끌어 큰 공을 세우셨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영천성이 함락되었단다.
여기는 내가 학교 다닐 때 야외 교실이었다. 주로 무더운 여름에 음악 이나 미술, 오락시간을 이 곳에서 떼운 듯 하다.
그리고 어느 해인가는 스승의 날 행사를 여기서 한 적이 있었다. 전교생이 다 모일 수는 없어 고학년만 참석했지 싶다.
작약으로 꽃목걸이를 만들어 선생님께 걸어 드리고, 모두 일어나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렀다.
여긴 그때 모습 그대로 변하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 돌로 조그맣게 쌓은 단이 강단인 셈이다.
이제는 아이들 대신 애기똥풀이 차지하고 있다. (유정해서 바로도 찍어보고, 거꾸로도 찍어보았네)
이곳은 진동단으로 돌기둥 끄트머리에 돌로 된 솟대가 올려져 있다.
동제를 지내고, 진동단 둘레를 돌면서 꾕가리를 치던 생각이 난다.
예전에 있던 작고 투박한 새는 어디로 날아가고 확실한 모습의 오리가 올려져 있다.
어릴적 저 소나무에 붙어있는 송진을 긁어 밀껌과 같이 싶기도 했다. 그러면 밀껌이 쫄깃쫄깃 탄력이 붙는다.
(껌이 귀한 내 어린 시절에 여자아이들은 곧잘 밀로 껌을 만들어 씹었다. 밀을 입에 넣고 씹다가 꺼내어 물에
헹구기를 반복하면 드디어 껍질이 완전히 씻겨 나가고 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껌이 너무 물러서 씹는 맛이
안 나기에 송진을 넣거나 천망개 얇은 막을 벗겨 같이 씹어 쫄깃거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
연못도 완전히 돌연못으로 변했다. 4대강 사업처럼 연못도 완전 분위기가 바뀌었다.
솔밭 이쯤에서 공기놀이를 참 많이도 하고 놀았다. 내가 또 한공기 했다는...
여긴 바깥성안, 즉 반대편 솔밭인데 저 소나무엔 주로 소를 매었다.
여름 방학 때, 점심 먹고 오후 2시쯤 되면 아이들이 우루루 솔밭으로 몰려들어 각기 자기 집 소를 찾아 몰고 갯골로 소 먹이러 갔다.
나는 4학년 때 부터 소 먹이러 다녔다.
산골짝에 소를 몰아 넣은 뒤 우리는 감자를 구워먹기도 하고, 그늘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공기를 받기도 하고, 산치락을 내 달으며 술래잡기 놀이도 했다.
그렇게 놀던 시간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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