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에서 점심을 먹고, 상화고택으로 이동,
상화고택 마당에 있는 상화시비. (달성공원에도 상화詩碑 가 있지. 달성공원 상화시비는 해개이한테도 말 안한 추억이 있다)
엽서을 정말 많이 썼는데...
이젠 엽서를 부칠 주소를 외지 못해서도 못 부치겠네.
돌호박이 마중물 그릇으로 변신해 있네.
대구 제일교회 담쟁이 넝쿨이 기 막힌다.
저 담쟁이는 언제부터 저 교회 벽을 타기 시작했으까?
담쟁이가 벽돌틈으로까지 파고 들어 이제 더 이상 담쟁이를 둘 수가 없어 곧 뜯어 내야 할 판이라고 한다.
대구 약전 골목이 <약령시>로 폼 나게 변해 있다.
계산성당, (내부가 정말 아름답다)
내친구 김혜경 오빠가 여기서 결혼식을 할 때 와 봤었는데 옛 기억은 하나도 안 난다.
현풍 도동서원으로 가는 길. 다람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동서원은 조선 5현(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의 한 분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보물 350호다. 고종 8년(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주요 47개 서원중의 하나로 역사적인 의의가 매우 큰 서원이다.
처음 선조 원년(1568년)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비슬산 기슭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중건을 거쳐 선조 40년(1607년)에 지금의 이름인 도동서원이라 사액되었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은 누구인가
김굉필 선생은 1454년(단종 2년)서울 정능동 에서 태어났으며,자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喧堂)
사옹(蓑翁),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서흥(瑞興)이다.
고려 후기의 사족(士族)인 증조부 중곤(中坤)이 수령과 청환(淸宦)을 역임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현풍현에 이주하게 되면서 그 곳을 근거지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세 되던해에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개천바위 위에 한훤당을 짓고 선비들과 사귀면서
학문을 딱았다. 또한 그는 김종직(金宗直) 1431 - 1492)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웠는데,
이를 계기로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를 小學童子라 일컬었다고 한다.
이후 평생토록 소학을 독신(篤信)하고 모든 처신을 그것에 따라 행하여 소학(小學)의
화신(化身) 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나이 30세에 이르러서 사서삼경(四書三經)등 을
섭렵하였다. 1480년(성종 11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입학
하게 되었고, 그 뒤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 등이 되었으나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장(杖) 80대 와 원방부처
(遠方付處)의 형을 받고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가 2년뒤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 되었다.
그 는 유배지 에서도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힘써 희천에서는 조광조 에게 성리학을 전수
하여 우리나라 유학사의 맥을 잇는 계기를 마련 하였다.
그후 성균관 유생들의 문묘종사(文廟從祀) 건의가 계속되어 1575년(선조 10년) 에는 시호가
내려 졌고 1510년(광해군 2년)에는 대간과 성균관 및 각도 유생들의 지속적인 상소에 의하여
정여창(鄭汝昌 1450 - 1504), 조광조(趙光祖 1482 - 1519), 이언적(李彦迪 1491 - 1553),
이황(李滉 1501 - 1570), 과 함께 조선 5현( 朝鮮五賢)으로 문묘(文廟)에 종사( 從祀)되었다.
한훤당 선생을 입향한 전국에 현존하는 서원은 대구달성 도동서원, 전남 순천 옥천서원, 전남
나주 경현서원, 전남 화순 해망서원, 경북 상주의 도남서원 이있다
수월루(水月樓)
이 문은 도동서원의 정문 격인 외삼문과 일종의 여유공간인 누각으로,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건물이다.
유생들의 휴식처나 강독 공간으로 사용 되었으며 누각에 올라 서면 동쪽에서 흐르는 낙동강과 고령 개진면의
일대의 평야가 보인다.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해서 정자가 운치를 더하는 듯하다.
나무야 ,나무야!
담장(보물 제 350호)
담장은 자연석을 정열시킨 지대석 위에 자연 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를 5단으로 줄 바르게 놓아
그 사이에 진흙층을 쌓아올리고 1m 간격으로 수막새를 엇 갈리게 끼워 넣었다.담장에 암키와와 수막새를 사용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장식 효과를 최대한 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담장의 모습이 매우 아름 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정 된 토담이라고 한다.
- 환주문
' 내 마음의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을 지닌 환주문(喚主門)은 중정당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문으로, 갓 쓴 선비들이 고개를 숙여 들어오도록 처음부터 문을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배움의 문으로 들어서는 선비는 스스로 마음가짐을 낮추고, 내 마음의 주인을 불러보게 하기 위한 깊은 뜻을 담고 있단다. 이 문의 이름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시 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담장(보물 제 350호)
담장은 자연석을 정열시킨 지대석 위에 자연 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를 5단으로 줄 바르게 놓아
그 사이에 진흙층을 쌓아올리고 1m 간격으로 수막새를 엇 갈리게 끼워 넣었다.담장에 암키와와 수막새를 사용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장식 효과를 최대한 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담장의 모습이 매우 아름 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정 된 토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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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이 있는 자리에 꽃봉오리를 새긴 돌이 있는데 이것은 드나들던 유생들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가다듬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란다.
마지막으로 서원 앞 공터에 돋자리를 펴고 간식을 먹었다.
꺼먼 봉지 포도는 해개이가 조달. (상세한 이야기는 차마 밝힐 수가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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