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우리말 산책(68) ― '합니다'인가 '해요'인가

뜰에봄 2009. 6. 21. 02:09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들의 말이나 편지에는 어쩔 수 없이 좀 편안치 않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해요체입니다. ‘합니다’라고 하면 좋을 자리인데 ‘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1) 교수님, 논문 고쳐 주셔서 고마워요.
    
이 글은 얼마 전에 중국 학생한테서 받은 이메일의 첫 부분입니다. 당연히 ‘고맙습니다’라고 해야 할 법한데
이 학생은 번번이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한국어를 배운 외국 학생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연구실에 들렀다가 가면서 “교수님, 또 봐요” 그러면서 나가는 학생도 있었으니까요.

한국어는 흔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분류됩니다. 무엇보다 경어법이 복잡해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들도 우리 경어법을 두고 불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좀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만 미국에서 우리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한 교사가 볼멘소리로 그랬습니다. 한국어의 경어법을 좀 단순화해서 가령 ‘해’와 ‘해요’ 두 가지로만 하면
안 되겠냐고. 참으로 어이없는 질문이어서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신발 만들기 어렵다고 발을 신발에 맞게 고칠 수는
없지 않겠냐고 대답하는 것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만 우리 경어법은 골칫거리라면 골칫거리입니다.

특히 말을 듣는 사람을 높이는 등급은 얼마나 복잡합니까. 가령 전화를 받은 사람에게 지금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물을 때 다음에서처럼 여러가지로 달리 말하는 식이니 말입니다.

(2) ㄱ. 누구니?
     ㄴ. 누구야?
     ㄷ. 누군가?
     ㄹ. 누구요?
     ㅁ. 누구예요?
     ㅂ. 누굽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근래에 와서 좀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합니다. 소위 하게체라고 하는
“이게 자네 건가?”라든가 ‘하오체라고 하는 “난 모르오”와 같은 표현이 근래 급격히 자취를 감추어 가면서
경어법 등급이 단순해져 가고 있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화를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일이 있습니다. 높임말로 ‘해요’만 있으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주장이 그 하나입니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한 미국인 교수가 그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인데 서울에 가 들어 봐라,
‘합니다’가 들리느냐 맨 ‘해요’이지 하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는 ‘해요’ 하나만 가르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골머리인데 잘됐다고 생각하는 동조자가 많은지 외국인용 한국어 학습서에는 ‘해요’만 중점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도 ‘합니다’의 존재를 거의 무시해 버리고 ‘해요’와 ‘합니다’의
등급을 하나로 묶으려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앞의 중국 학생도 이런 것에 오도(誤導)된 피해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좀더 깊게 보면 어떤가요? 방송을 들어 보면 뉴스 시간에는 철저히 ‘합니다’로 일관합니다.
“지금부터 아홉 시 뉴스를 시작하겠어요”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상하게 들리겠지요? 지금 제 글도 거의 ‘합니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만 ‘합니다’는 엄연히 그 고유의 영역이 있습니다. 취직 면접 때에도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예, 열심히 하겠어요”보다 점수를 더 받을 것이고, 보초를 서는 병사가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라고 해야지
“근무 중 이상 없어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합니다’는 너무 격식적이고 무거울 수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라고 하면 정답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예의바른데 “안녕하십니까” “건강하십니까”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끼게 되겠지요. 뉴스가 끝나고
일기예보를 할 때는 가끔 ‘해요’를 섞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FM 시간에는 진행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해요’를
섞는 비율이 좀더 높아집니다. 이것은 ‘합니다’가 풍기는 무거움을 좀 완화하는 장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조차도 ‘해요’를 너무 많이 섞으면 귀에 거슬립니다. 더욱이 ‘해요’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근래엔 어찌된 셈인지 “제가요 버스가 안 와서요 택시를 타긴 했는데요 길이 막혀서요 아무래도 좀 늦겠어요”처럼
‘-요’로 범벅을 만드는 말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의 예문 (1)은 제가 개인적으로 석사논문을 고쳐 주고 고맙다는 인사로 받은 메일인데 사실 ‘고맙습니다’라고 해도
성에 안 차고 ‘얼마나 고마운지 이 고마움을 어쩌고 저쩌고’ 하며 포장을 잘 해야 할 상황인데 ‘고마워요’는 미흡한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어서 그저 웃고 넘기지만 우리말 교육의 현장에 대한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댓글
 

꼬꼬마/백태순   - 2009/06/16 12:02:15    
제 경우에는 '고맙습니다.' 는 언제나 '고맙습니다'가 정답이고 '고맙습니다'뿐인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라는 말은 거의 사용을 안 하고 사무실 직원이나 후배들에게는 '고마워'라고 말합니다.
'고마워요'는 어쩐지 어쩡정한 느낌이 듭니다.
하게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경어를 하기도 그런 사이에서의 어색한 인사말처럼 들립니다.
억지 웃음같은.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와 존경을 보내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 ^
뽀로로   - 2009/06/16 14:20:07    
중학교때 미술선생님 [김명주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살면서 "고, 미, 안" 이 세가지 단어를 늘 기억하고 살라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라면 늘~ 마음속에 기억해야 할 말이라고...

아름다운 표현들... 무수히 많은 의성어 들은...아마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어 그렇지 않을까? 하는 ...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에 각종 신종어가 생겨나고... 가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집니다.
30대 초반인 저도 깜짝 깜짝 놀랄때가 많습니다.
도무지 무슨 말 인지 못 알아 먹는 단어들이 많아 졌는데, 그 중 하나는 저희 신랑 이름이란겁니다. ㅎㅎ

저희신랑 이름이 "진상"입니다.
그 이름이 요즘 온갖 방송에 자주 나오네요. 멋도 모르고 있던 저희 신랑과 저는
한참을 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 꼴불견?" 처럼 그런 뜻으로 쓰이더라구요.
이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네요... ^^;

아름다운 우리말... 저 부터라도 잘 쓰고, 잘 지켜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말나리   - 2009/06/16 23:11:21    
이번 우리말 산책을 읽고 나서 제 언어 습관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
손님들을 대할 때 조차 해요체가 더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경우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긴 하겠지만
<해요’를 너무 많이 섞으면 귀에 거슬립니다. 더욱이 ‘해요’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라는 말씀에 해요투를 조금 주의해야겠구나 생각됩니다 .
저는 노인봉 님께는 당근 합니다체를 쓰지만 근데 때로는 해요체를 쓰고 싶은때도 있어요~~~오 ^^*
뜰에봄   - 2009/06/16 23:14:36    
외국인들이 우리말 경어법을 다 익히려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렇지 높임말로 ‘해요’만 있으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주장은 우리 정서에 비추어볼 때
정말 너무 한 것 같아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어서 그저 웃고 넘기지만 우리말 교육의 현장에 대한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시는
노인봉 님의 말씀엔 저도 찔리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제 경우 손아래 사람들에게는 하오체도 잘 쓰는 편인데 어찌 말하다가 보면 뒤죽박죽일 때도 많답니다.
앞으로 말을 잘 가려쓰도록 하겠습니다. ^^*



밀물   - 2009/06/17 15:06:27    
'...합니다.에 대한 잘 읽습니다.

뉴스를 듣고 있으면 '...습니다, ...입니다.' 로 끝나는
그 단조로운 리듬이 짜증스럽습니다.
한 때 '우리 말은 경어체나 문어체가
다 버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편 구어체로 가면 영어 못지않게 단조로움을 벗어나지요.
金剛居士   - 2009/06/17 16:33:29    
우리나라 말이 어렵긴 어렵습니다.
배우기를 게을리 해서인지 수십 년이나 국어를 배우고 익혀서 사용해도 지금도 알게 모르게 실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으니 말입니다.
표현은 물론이려니와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자주 틀리곤 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지금도 가끔은 초등학교 국어책을 들여다보아도 쉽게 익혀지지가 않으니 답답합니다.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태어난 땅에서 우리 글을 배웠어도 사용함에 있어 어려움을 많이 겪는데
하물며 외국인이야 그 어려움이 오죽할까 싶기도 합니다.
경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압존법을 제대로 구사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뜰에봄 님의 가입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상의 글은 제가 가입인사 란의 댓글에 다는 첫 번째 줄인데 결국은 안녕하세요를 안녕하십니까로 다시 바꿔야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를 사용하다가 좀 경직된 듯하여 '요'로 했었는데 노인봉 님의 가르침을 받고보니 맞는 표현이 아닌 듯합니다.
蘭陽   - 2009/06/19 16:33:28    
"너는 취미가 뭐니?"
""야생화 찰영다닙니다"
고등학교 국어담당(은퇴) 선생님이 찰영이 뭐니?
초+아을 빨리해봐
다 따라합니다. "초아ㄹ 영" "촬영"
"그봐 되잖아"
...역시 국어담담선생님의 직업관은 뚜렷했습니다.
제 나이 54살 인데 ..ㅎㅎ 가르켜 주시다니^^

우화의강   - 2009/06/28 22:00:09    
우리말 경어법의 복잡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용언의 종결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어체계가 약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어 간소화 된다고 하더라도
그 완고함이 얼마나 완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한국어의 경어법을 익히는 것은 악몽에 가깝다는 외국인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말을 걸기 전에 자신과 상대의 위계를 판단해서 서술어의 어미를 선택하고,
존칭조사의 사용여부도 판단하고, 그 위계질서가 사회적 신분만이 아니라 친분까지도 고려해서
사석인지 공석인지 까지도 판단 후에 적절한 경어를 선택, 사용해야 하는 한국어의 까탈스러움이
충분히 악몽이 되고도 남을 거라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ㄱ. 누구니?
ㄴ. 누구야?
ㄷ. 누군가?
ㄹ. 누구요?
ㅁ. 누구예요?
ㅂ. 누굽니까?

처럼 똑같은 내용의 말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져야 함은
문법지식도 중요하지만 화용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비(是非)가 아니라 적부(適否)로 인해 말에 의한 갈등들이 발생될 때가 많음을 봅니다.
실제의 언어생활에서 문법 뿐 만이 아니라 이 화용규칙을 잘 적용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경어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절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근간이 되고 그 바른 표현의 한 방법이 경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경직되고 형식화될 때는 오히려 구성원간의 친밀감을 해하는 사슬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경직된 경어체계는 아주 깊은 수준에서 민주주의에 적대되며
한국어 경어체계의 흔들림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통이라고 표현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경어법이 상호적이기보다는 일방적이고 수평적이기보다는 수직적인 것에 가깝다면
올바른 형태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요..
노인봉   - 2009/06/29 21:52:29    
<우리말 산책>은 일차적으로 인디칸들이 독자이지만 비회원인 제 동료들도 읽고 또 앞으로 책이 나오면
일반 독자들도 읽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어 이번 글은 우
선 그분들에게 쓴 글이라고 보면 좋을 것입니다.
‘합니다’만 쓰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고 ‘해요’가 나쁜 말이라는 뜻도 담지 않았습니다. 엄연히 각각의 영역이 있는 걸
인위적으로 뭉개버리려는 시도에 대해 시정을 촉구한 글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이 워낙 많아
그들로하여금 좀더 올바른 우리말을 익히게 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단이라 봐도 좋겠고요. (여기에도 ‘-요’를 썼지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쟁이 언어에도 있지요. 언어에 따라 국민성이나 사람이 달라진다는 쪽과
말은 그저 사회의, 또는 국민성이나 인품의 거울이라는 쪽이 그래서 싸우지요. 그런데 양면이 다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경어법이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한편 그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겠지요.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우리 경어법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는 방해꾼인지. 사장도 사원에게 반말을 안 쓰고
백화점에 가서 어린 점원에게도 반말을 안 쓰는 것도 그렇고 '하게체'나 '하오체'가 위축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의
영향이긴 할 것입니다.

언어마다 뭘 더 세밀히 나누는지 다 다릅니다. 우리는 “우승했다”고 하면 그게 오늘 오전에 있은 일인지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우리 경어법만큼 엄격히 지키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세분해서 구별하면 일단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음을 잘 구별해 주는 오디오를
더 높이 평가하듯이 말입니다. 우리 경어벙은 우리말의 귀중한 개성일 것입니다. 저절로 시들어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억지로 반짝이는 개성을 죽이려고 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