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들의 말이나 편지에는 어쩔 수 없이 좀 편안치 않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해요체입니다. ‘합니다’라고 하면 좋을 자리인데 ‘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1) 교수님, 논문 고쳐 주셔서 고마워요. 이 글은 얼마 전에 중국 학생한테서 받은 이메일의 첫 부분입니다. 당연히 ‘고맙습니다’라고 해야 할 법한데 이 학생은 번번이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한국어를 배운 외국 학생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연구실에 들렀다가 가면서 “교수님, 또 봐요” 그러면서 나가는 학생도 있었으니까요. 한국어는 흔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분류됩니다. 무엇보다 경어법이 복잡해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들도 우리 경어법을 두고 불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좀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만 미국에서 우리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한 교사가 볼멘소리로 그랬습니다. 한국어의 경어법을 좀 단순화해서 가령 ‘해’와 ‘해요’ 두 가지로만 하면 안 되겠냐고. 참으로 어이없는 질문이어서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신발 만들기 어렵다고 발을 신발에 맞게 고칠 수는 없지 않겠냐고 대답하는 것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만 우리 경어법은 골칫거리라면 골칫거리입니다. 특히 말을 듣는 사람을 높이는 등급은 얼마나 복잡합니까. 가령 전화를 받은 사람에게 지금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물을 때 다음에서처럼 여러가지로 달리 말하는 식이니 말입니다. (2) ㄱ. 누구니? ㄴ. 누구야? ㄷ. 누군가? ㄹ. 누구요? ㅁ. 누구예요? ㅂ. 누굽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근래에 와서 좀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합니다. 소위 하게체라고 하는 “이게 자네 건가?”라든가 ‘하오체라고 하는 “난 모르오”와 같은 표현이 근래 급격히 자취를 감추어 가면서 경어법 등급이 단순해져 가고 있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화를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일이 있습니다. 높임말로 ‘해요’만 있으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주장이 그 하나입니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한 미국인 교수가 그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인데 서울에 가 들어 봐라, ‘합니다’가 들리느냐 맨 ‘해요’이지 하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는 ‘해요’ 하나만 가르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골머리인데 잘됐다고 생각하는 동조자가 많은지 외국인용 한국어 학습서에는 ‘해요’만 중점적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도 ‘합니다’의 존재를 거의 무시해 버리고 ‘해요’와 ‘합니다’의 등급을 하나로 묶으려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앞의 중국 학생도 이런 것에 오도(誤導)된 피해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좀더 깊게 보면 어떤가요? 방송을 들어 보면 뉴스 시간에는 철저히 ‘합니다’로 일관합니다. “지금부터 아홉 시 뉴스를 시작하겠어요”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상하게 들리겠지요? 지금 제 글도 거의 ‘합니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만 ‘합니다’는 엄연히 그 고유의 영역이 있습니다. 취직 면접 때에도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예, 열심히 하겠어요”보다 점수를 더 받을 것이고, 보초를 서는 병사가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라고 해야지 “근무 중 이상 없어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합니다’는 너무 격식적이고 무거울 수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라고 하면 정답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예의바른데 “안녕하십니까” “건강하십니까”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끼게 되겠지요. 뉴스가 끝나고 일기예보를 할 때는 가끔 ‘해요’를 섞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FM 시간에는 진행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해요’를 섞는 비율이 좀더 높아집니다. 이것은 ‘합니다’가 풍기는 무거움을 좀 완화하는 장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조차도 ‘해요’를 너무 많이 섞으면 귀에 거슬립니다. 더욱이 ‘해요’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근래엔 어찌된 셈인지 “제가요 버스가 안 와서요 택시를 타긴 했는데요 길이 막혀서요 아무래도 좀 늦겠어요”처럼 ‘-요’로 범벅을 만드는 말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의 예문 (1)은 제가 개인적으로 석사논문을 고쳐 주고 고맙다는 인사로 받은 메일인데 사실 ‘고맙습니다’라고 해도 성에 안 차고 ‘얼마나 고마운지 이 고마움을 어쩌고 저쩌고’ 하며 포장을 잘 해야 할 상황인데 ‘고마워요’는 미흡한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어서 그저 웃고 넘기지만 우리말 교육의 현장에 대한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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