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우리말 산책 (69) ― '소꿉질'의 사투리

뜰에봄 2009. 8. 22. 22:54

 
네 살짜리 손녀가 이제는 제법 저와 좋은 친구가 되어 줍니다. 이놈은 좀 활달하고 적극성이 있어 누구랑 놀든
제 놈이 주도하기를 좋아하는데 바둑돌을 가지고 놀면서도 할아버지는 아빠 해, 난 엄마 할게, 이건 밥이고
이건 김치야 그러면서 놉니다. 이놈이 그렇게 저를 먼 옛날로 이끌어 갑니다.

누구든 어렸을 때 어떤 형태로든 소꿉질은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걸 뭐라 불렀는지 기억이 나시는지요?
저의 고향에서는 ‘종곱질’이라 하고 그때 쓰는 사금파리를 ‘종곱파리’라 했는데 이상하게 들리지요? 그런데 이것만
이상한 게 아닐 것입니다. 누가 또 자기 고장에서는 뭐라고 했다고 하면 그것도 대개는 낯설게 들릴 것입니다.  좁은 땅에
웬 사투리가 그리 많으냐고 하지만 ‘소꿉질’의 사투리는 유난히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번의 ‘부추’의 사투리도 그리 적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소꿉질’의 사투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라고
할 만합니다. 『한국언어지도』를 만들면서 이놈은 하도 복잡하여 몇 번이나 빼버렸다가 그래도 아까운 생각이 들어
작성하긴 했는데 얼마나 여러 번 고쳐 그렸는지 모릅니다. 워낙 복잡하여 목록을 정리하는 일도 쉽지 않고 그것을
계열별로 분류하기는 더욱더 어려운데 그래도 대략이라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소꿉질’계 : ㉮ 소꼽질, 소꿉질, 수꿉질
                     ㉯ 소꼽장난, 소꿉장난, 소껍장난, 소꿉장냥
                     ㉰ 손꼽놀이
② ‘통굽질’계 : ㉮ 통굽질, 통곱질, 동굽질, 동갑질, 도꼽질
                      ㉯ 통굽장난, 통귑장난, 토꼽장난, 도꼽장난, 도꿉장난, 또꼽장난, 또꼽
                      ㉰ 도꿉놀이
                      ㉱ 통구바리, 동고파리, 도구파리, 도꼬파리
③ ‘종곱질’계 : ㉮ 종곱질, 종갑질 ㉯ 종굽장난 ㉰ 쪼곤놀이
④ ‘동두깨비’계 : ㉮ 동드깨미, 동디깨미, 동지깨미
                        ㉯ 동두깨비, 동도깨비, 동지깨비 ㉰ 동구까래 ㉱ 동니깨
⑤ ‘반두깨미’계 : ㉮ 반두깨미, 반주깨미, 반조깨미, 방두깨미, 방드깨미
                        ㉯ 방두깨비
                        ㉰ 반두깽이, 반드깽이, 방두깽이, 방주깽이, 방지깽이, 빵뜨깽이, 빵주깽이, 빵깽이
                        ㉱ 반주까리 ㉲ 반두깨놀이
                        ㉳ 반두깨, 반주깨, 방주깨
⑥ ‘바꿈살이’계 : ㉮ 바꿈살이, 바끔살이, 빠끔살이
                       ㉯ 바꿈새기, 바끔새기
                       ㉰ 바꾸매기, 바꼬매기
                       ㉱ 바까마리 ㉲ 바깜질 ㉳ 바끔 ㉴ 가꼼살이
⑦ ‘새금박질’계 : ㉮ 새금박질, 새금팔질, 새깜질
                        ㉯ 새끔쟁이
                        ㉰ 삼바꼼질, 삼방질, 삼바꿈
⑧ 기타 : 흑밥, 항가빠치, 살림살이, 세간살이, 노래깨미, 고방질, 바방질  

어떤가요? 놀랍지요? 무슨 재주들이 있어 이렇게도 여러가지로 말을 만들어 냈는지 정말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디 숨은 그림 찾듯 자기가 어렸을 때 쓰던 사투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시지요. 찾으셨나요?
이렇게 많이 늘어놓았는데도 혹시 빠진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에 그렇지 님이 느닷없이 ‘동갑살이’가
뭔지 아냐고 하길래 자신은 없는 대로 소꿉질이 아니냐고 하니까 맞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한테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불현듯 어릴 때 많이 쓰던 게 되살아났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앞의 표에는
그 비슷한 것은 있는데 딱 거기에 맞는 말은 없네요. 방언조사라는 게 한 군(郡)에서 한두 사람씩을 데리고
하는 것이어서 어차피 빠지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몇 개가 동시에 쓰이는 것은 그중 대표만 올리기 때문에
빠진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사투리가 이리도 유별나게 여러 갈래로 갈렸을까요?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정작 정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억지로 짐작을 해 본다면, 소꿉질은 어릴 적에 겨우 몇몇이서 소규모로 하던 것이라
말의 쓰임도 자연히 좁은 울타리에서 맴돌았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더욱이 소꿉질은 대개
여자애들이 하는 것이어서 아주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었을 것입니다. ‘쌀’이나 ‘씨름’ 같은 것이 전국을 무대로 쓰는
‘전국형’ 어휘라면 ‘소꿉질’은 시골 동네의 한 모퉁이를 무대로 하는 ‘촌락형’ 어휘였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사투리도
잘게 세분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긴 하여도 ‘소꿉질’이라고 해서 한 마을에 갇혀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비록 멀리는 세력을 못 뻗쳤어도
인접한 지역끼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아주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사투리를 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의 표에서 ① ‘소꿉질’계, ② ‘통굽질’계, ⑤ ‘반두깨미’계, ⑥ ‘바꿈살이’계 식으로
묶어 보면 같은 계열의 사투리들이 서로 이웃해 쓰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앞의 지도에서 색깔로 구분을 해 놓았는데 그걸 보면  ①의 ‘소꿉질’계는 경기도와 충남 서북부에
퍼져 있고, ②의 ‘통굽질’계는 강원도와 충북 중북부 쪽으로, 그리고 전라남북도 및 충남 남부에는  
⑥의 ‘바꿈살이’계가 꽤 큰 세력을 펴고 있습니다. 한편  ④의  ‘동두깨비’계와 ⑤의 ‘반두깨미’계는 각각
경상남북도의 동쪽과 서쪽으로 갈려 쓰이는 것을 걸 볼 수 있습니다.

‘소꿉질’의 사투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똑같은 대상을 두고 이렇게
여러가지로 달리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게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다채롭고 찬란한 세상인가 그런
생각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투리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세상이 그렇게 밝아 보이는 것만도 아닙니다. 저 다채로운 것들이
빠른 속도로 하나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촌여자’ 그렇지 님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노라고
하였으니 누가 이 생명들을 지켜 줄 수 있겠어요?  하긴 이제 가지고 놀 사금파리도 없습니다. 놀아도
너도 나도 프라스틱을 가지고 놀겠지요. 그나저나 이제 누가 이 잗다란 놀이를 하겠어요, 신나는 게임이
넘치고 넘치는데.  우리들이라도 오늘 하루 잠시나마  먼 어린 시절의 꿈결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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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마/백태순   - 2009/07/09 22:00:49  
숙모님이 신혼이셨을때 울 할머니 늘 그러셨어요
'둘이 사는데 살림이랄게 뭐 있나. 동두깨비 사는 것처럼 뭐 제대로나 하고 사는지.. '
살림이 서툴거나 제대로 못하는 새댁들에게 동두깨비 사냐고 하셨답니다.
동두깨비 살 때
깨진 기와장은 고추가루나 양념으로 쇠비름, 쌉싸름한 괭이밥 등도 반찬으로 했던 기억이 나요.
깨진 사기그릇 쪼가리인 사금파리도 훌륭한 동두깨비의 자산이었구요.
울 할머니는 경남 태생(울산인근 호계)이셨구요.
어릴 적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꼽놀이 한다를 '빵깨~이 산다'라고도 했습니다.

사투리를 말씀하시니까 '오랍더리'때문에 생긴 웃을 일도 있답니다.
저는 '오랍더리'를 고유명사로 인식하여 어느 일정 지역명이라고 이해했었는데
어머니와 대화 중에 이곳도 저곳도 다 '오랍더리'라 하시길래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일년도 더 지나서야 그 의미를 알고 신랑이랑 한참 웃었답니다. ^ ^
무울/채병수   - 2009/07/09 22:12:55  
저는 어릴 때 빵깨~이놀이라고 그랬습니다. 윗 글에는 반두깨미 계열의 빵깽이라고 표현되어 있군요.
'깽'의 받침 ㅇ은 매우 특이하게 읽어 다른 지역 사람들은 흉내도 못 내지요. ^^
말의 분포도를 볼 때마다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말나리   - 2009/07/09 23:14:59  
오늘 <까끔살이>하며 놀던 친구 영이 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멀리 창원에서 사는데 아버지 제사에 가는데 고향에서 만나자고요 ^^
우린 까끔살이라고 했고< 빠끔살이>라고도 했던거 같습니다.
노인봉 님의 한국언어지도는 세월이 지날 수록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같은 보물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자꽃   - 2009/07/10 09:01:16  
아주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의 잊었던 기억을 뜨올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맘때 쯤이면 동네 어귀의 큰 팽나무 그늘아래서 매매소리 들으며 공기놀이며 땅따먹기놀이 하던 일들이 급히돌리는 비디오필름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잠간의 행복에 빠져들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귀동   - 2009/07/10 09:58:17  
제 고향에선 '통곱살이' 라고 했었어요.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길 한복판에서 땅따먹기랑 공기놀이며 비석치기 까지....ㅎㅎ
그렇지/백금자   - 2009/07/10 10:13:36  
아항 ~ 이렇게나 많은 동갑살이 친구들이 있었네요 정말 놀랍습니다 덕분에 참 다양함을 배웠습니다.
사는 동안 잊어 버리지 말고 살자고 다짐합니다.
우화의강   - 2009/07/10 12:25:07  
한국언어지도 책을 읽으면서 사투리의 다향함도 다양함이지만
그 많은 사투리들을 언어지도로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만든 책의 내용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말나리 님의 말씀처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비견될 보물이어요..

바둑돌을 앞에 두고 소꿉놀이를 하는 손녀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계실 노인봉 님을 상상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정경입니다.^^

어린 날의 기억들은 늘 마음 한 켠을 싸아하게 하는 그리움입니다.
할리킴   - 2009/07/10 22:15:42  
소꿉장난만 생각나는 충청도 출신입니다.
그런데 처음 들어보고 생소한 사투리들도 많네요.
재미있습니다.그럼 표준말은 소꿉질인가요?
너무 다양해서 표준말 정하기도 어렵겠네요.
뜰에봄   - 2009/07/11 10:26:40  
'소꿉질'의 사투리가 이토록 많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빵깨이, 또는 빤뜨깨이 산다고 했습니다.
노인봉 님, 네 살짜리 손녀하고 빵깨이 사시는 모습,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지어집니다.
아빠 말투가 느려서 엄마가 불만스러울 것도 같아요. ㅎㅎ

저는 빵깨이 살 때도 살림 욕심이 좀 유난했던 듯한데 사금파리로 그릇 만들다가 걸핏하면 돌로 손을 찧곤 했습니다.
요즘은 소꿉놀이 장난감도 기막히게 나오더군요.
예전 그 시절 빵깨이 살 때 요즘같은 소꿉 장난감을 봤다면 잠도 못 잤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나고 나니 흙을 짓이겨 밥 짓고. 찔레 꺾어 김치담고, 할미꽃으로 색시도 만들던 그 시절이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떠올리게 되네요.
요즘은 시골에 아이들고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컴푸터에만 매달리는 세상이니
소꿉질 사투리는 자연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싶어요.
솔바람   - 2009/07/11 22:33:24  
빠끔살이계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엄마 아빠 아가하던 친구들이 이젠 엄마되고 아빠되고
다시 그 아이들이 엄마되고 아빠 될 나이들이 되어가도
빠끔살이 하던 그 시절의 추억은 새롭기만 합니다.
노인봉   - 2009/07/13 10:01:25  
이번 글은 사실 솔바람 님의 숙제 성격이 있습니다. 꽤 오래 전입니다만 '부추-솔-정구지'를 가지고
방언지도 이야기를 하였을 때 이런 이야기를 몇 번 더 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고 그래서
그러마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 차례 더 해서 숙제를 다 마칠까 합니다.

무울 님, 저는 '깽'의 'ㅇ' 발음을 잘 한답니다. 우리 고향에서도가령 '어머니'를
'어멍이'도 아니고 '어머이'도 아닌 묘한 발음으로 말하니까요. 그런 사투리를 쓰는
지역이 꽤 있는 듯합니다. 방언조사 때는 이런 발음은 특별한 기호를 써서 구별하는데
지도를 만들 때는 그런 세부적인 차이는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말나리 님의 괜한 소리, 또 그걸 따라하신 소리는 거두어 주소서. 좌불안석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표준어로는 '소꿉질' 하나만 뽑혔는데 저는 '소꿉놀이' '소꿉장난' 또는 '소꼽놀이'나
'소꼽장난'도 다 표준어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네살 짜리 손녀는 얼마 전 다섯 살이 되었는데 이놈이 저와 자주 하는 놀이 중에
지도 그리기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지도 그려요 그러면서 그전에 그리다 남은
원고지 지도에다 색연필로 색을 칠하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때 작업하던 모습이
좋아보였던 모양인데 먼 훗날에 이놈이 그때의 광경을 기억해 주면 좋게습니다.
배짱이   - 2009/07/14 11:32:16  
내년에는 정식으로 국문학을 공부할까.....숙고 중인데
노인봉님 주신 소꿉질 하나만 봐도
아서라~ 말아라~
팍~ 기가 꺾입니다.
두루미   - 2009/07/15 20:38:44  
저는 중부지방에 살아서인지 '소꼽장난' 혹은 '소꼽놀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너무 소꼽장난이 하고 싶었지만
동생 하나 업고, 하나 손잡고, 하나 소꼽바구니 들려 앞세우지 않으면
놀러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무녀리...
까마득한 그 시절이 생각나서 눈물겹습니다...

이제 다섯 살이면... 제인이 동생인가요?
얼마나 어여뻐하실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

노인봉 님, 평안하시지요? 오래 뵙지 못 해 뵙고 싶습니다...
노인봉   - 2009/07/21 17:50:33  
두루미 님, 다섯 살배기 다윤이는 이가이고 제인이는 한가고. 제인이는 벌써 고2랍니다.
배짱이 님(저는 '베짱이'라고 못 쓰는 게 늘 불만이랍니다) 숙고하시는 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재미로 하는 게 공부가 아닌가요? 할 공부가 있다는 것도 신나는 일이고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솔바람   - 2009/08/07 09:19:40  
[배짱이/배찬희]님이 어느새 아호를 [배짱이]로 바꾸셨네요.
어려운 재미로 하는 공부...
참 의미 심장합니다. 어렵지 않으면 이미 공부가 아니겠지요.
저까지 배려해 좋은 글 올려주신 노인봉님.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