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이 머무는 뜰

연가의 막간:유럽견문록(8)-페니키아의 최종적 도달점 "가나안"-

뜰에봄 2010. 12. 21. 02:13

 

페니키아에 대해 세상 어느 문헌보다 자세히 기록한 문헌이 있다고 했을 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책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페니키아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자세히 기록한 문헌은 총 39권으로 이루어진

기독교의 성경, 즉 구약(Old testament)성경입니다.

 

구약에서의 페니키아는 “가나안”이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페니키아를 “베니게”로 부릅니다.

구약에서 “가나안”이란 지명은 무려 155번이나 등장하며 39권의 구약성경

중에서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17권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절반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나안”이란 나라가 “페니키아”라는 사실에

대해 기독교인들도 잘 모르고 있고 문명사학자들도 그다지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아!! 페니키아가 가나안이었단 말인가!!“하며

놀라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어도 가나안은 그냥 가나안에서 끝나고, 그 나라가 페니키아로서

전 서구 문명을 지배하는 헬레니즘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명사학자들이 페니키아가 가나안이었다는 사실을 빼 놓은 채 그리스부터 헬레니즘을

출발시켰기 때문에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마치

딴 세계에서 성립하여 평행적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문명사학자들 가운데 이 문제를 논할 때 흔히 “현대 문명에서는 이 두 평행선적

패러다임이 융합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문명사의 미래를 진단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패러다임은 운명적으로 융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두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곳에서 평행선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 두 패러다임은 한 곳에서 태생한 것입니다.

 

두 문명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혈통적으로, 문화적으로, 같은 뿌리에 있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두 문명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처음부터 적대적이었으며 본질상 융합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두 문명의 대립 과정이야말로 전 인류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전설과 신화와 문화와 문명을 통합하며, 더 나아가서는 역사마저

통합할 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서로 호환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거대한 소프트웨어가 된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유대 민족과 가나안 민족은 1000년 이상을 같은 지방, 같은 동네에 같이 섞여서

살았던 동네사람들이었습니다.

즉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1000년을 같이 동거하며 같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유대민족과 페니키아가 로마에 의해 거의 같은 시기에 멸망한 이유는 지금의 시리아와

요르단이라는 같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로마의 남하에 의해 같이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은 민족적 뿌리는 다르지만 지역적 뿌리는 같습니다.

유대민족은 노아의 장남 셈의 후손이고 가나안 민족은 둘째 아들 함의 후손이므로

아주 거슬러 올라가면 어쩌면 민족적 뿌리도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참고로 구약성경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유대민족과 같은 셈의 후손입니다.

왜냐면 셈은 황인종, 함은 흑인, 그리고 야벳은 백인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영화들이 다 서양 사람들이 만드는 바람에 예수님을 백인으로 착각하는데

예수님은 셈족에서 나왔으며 우리와 같은 황인종, 즉 동양 사람이지 백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유대민족과 가나안 민족이 섞여 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유대 민족이 가나안 민족이 사는 땅에 쳐 들어갔다가 모두 쫓아내지

못하는 바람에 같이 섞여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과 두 민족, 두 문화와의 관계를 왜 문명사학자들이 세상에

알리지 않았던 이유가 무었이었을까요.

왜 기독교 교인들조차 가나안이 페니키아고 이것이 헬레니즘의 뿌리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일까요.

 

아마도 문명사학자들은 구약자체를 신화나 전설의 일부로 간주하여 구약의 이야기를

가지고 페니키아의 실체를 가나안까지 확대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구약을 실증 사학에 포함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신학자는 신학자들대로 가나안을 구약의 역사로서 한정시켜버렸습니다.

신학자들은 가나안이 페니키아로서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까지 논증하는 것은

신학 범위 외적 문제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약은 많은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창조와 원죄의 문제, 메시아의 문제, 남은 자 사상 등, 많은 메시지가 구약에 나옵니다.

그러나 유대민족과 대결하는 “가나안의 일곱부족”에 관한 구약의 전승은 세계 문명사를

해석하는데 뿐만 아니라 구약자체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골격이 됩니다.

 

구약에서의 “가나안”, 즉 페니키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구약에서의 “가나안”은 쉽게 말하면 북한이 우리나라의 주적(主敵)이듯이

“가나안”은 유대 민족의 주적(主敵) 개념의 나라였습니다.

역사적 면만을 놓고 본다면 구약이란 성경은 유대 민족의 “가나안 정벌사”

즉 페니키아 정벌사로 정의해도 무방합니다.

 

유대 민족은 기원전 1500년 전에 야곱의 열두 아들을 내세워 가나안을 징벌하고자

했는데 그 정벌의 이유는 바로 가나안 즉 페니키아가 섬기고 있는 “바알”, “앗세라”,

“아스다롯”, “밀곰”, “다곤”과 같은 우상숭배를 멸절시키기 위해서 였다고 구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페니키아가 섬긴 “바알”신은 구약에서 16권에 걸쳐 119번 등장하고 있으며

“아세라” 여신은 40번, “아스다롯” 우상에 대해서는 15번, 조상신 “드라빔”

우상이 11번, 다곤 우상에 대해서는 9번, 태양상 우상이 7번, “밀곰”이 3번,

각각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우상을 섬기는 산당에 대해서는 75번 거론되고 있고 이러한 페니키아 신들을

“우상”이라고 선언하는 문구가 신 구약을 통 털어 무려 180번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숫자들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옛사랑이 인터넷 성경에서 검색어로서 직접 검색하여

세어본 것들입니다. 

 

"가나안 칠족속"

이것이 페니키아의 고향입니다.

페니키아 추적의 최종적 도달점은 "가나안 칠족속"이었습니다.

구약의 "가나안"이 페니키아의 원점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은 페니키아 우상숭배의 현상과 그로 인해 발생될 문명사적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온 지면을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리고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혈통적, 역사적, 지역적으로 한 뿌리였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서로 대립될 운명이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융합되지

못할 상극의 세계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는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섞이지 못할 이 상극의 문화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현실에서는 반드시 서로 섞이며 혼합하게 될 거라고

구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