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이 머무는 뜰

머나먼 연가(48)-K에 대하여(2)⑲

뜰에봄 2011. 7. 19. 13:07

 

뮤트가 K에게 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성장을 심미적 단계, 윤리적단계, 종교적 단계의 세단계로 나누었다네. 심미적 단계에서는 권태를 쫒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단계이며 윤리적 단계는 비로소 인간이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사는 단계이고 종교적 단계는 삶을 어떤 절대자의 이상에 귀속시켜 살고자하는 단계라고 하네. 나는 인생이 욕망의 지옥임을 깨닫고 절망하는 것은 분명한데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살 자신은 없다네. 키에르케고르의 삼 단계 설은 허구가 아닐까. 그 자신도 과연 윤리적이고 종교적 단계까지 성장한 삶을 살았을까. 성경은 읽을수록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드네..성경은 끊임없이 심미적인 인생은 안된다고 가르치니..

 

K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행님 성경 많이 보시는 건 알겠는데 거기 너무 집착하지는 마이소. 그거 외국 종교아닙니꺼. 경전을 읽는 것은 좋은 데 인간이 경전대로만 살 수 없는 거 아닙니꺼.

뮤트:

나는 점차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지만 기독교인은 아니네. 성경이 발설하는 메시지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네..

k:

에헤이..행님도 참.. 행님은 먹고 살만하니까요. 놀고 묵어서 자꾸 실 데 없는 생각을 하는 기라..먹고 살기 바뿌면 그런 생각할 틈이 어딘노..인생, 그냥 쉽게 삽시더. 인생 머인는데요, 아무것도 없슴미더. 등 따숩고 배부르고 정직하고 선하게 살면 그게 인생 아닙니꺼. 행님은 공부를 많이 해서 씰 데 없는 생각이 많은 거시 탈인거라..

뮤트:

인생 아무것도 없으니 이렇게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루스학파, 스콜라학파..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 기독교와 교묘히 얽혀 있는 것을 나는 성경과 교회의 이면사를 공부할수록 깊이 알게 되네. 헬라 철학을 가지고 헤브라이즘을 해석하다니...왜 세상은 이렇게 엉터리, 헛소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네.

k:

“하이고 행님. 맨날 책 보시더니 그 봐라..머리가 고마 이상해 졌뿌구마..하여튼 사람 공부 많이 하면 안 되. 공부 많이 하면 저리 돼뿐다카이..학문이 사람을 저렇게 살짝 도라삐게 만든다카이..

 

[사도행전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뮤트와 K는 그렇게 자주 어울렸다. 특히 술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행님 해장뽁꾹 먹으러 가입시더”라던지 “어제같이 너무 땡긴 날은 육수 좀 빼야 됩미더. 같이 사우나 가입시더”라는 전화가 곧잘 오곤 했다. 그리고 만난 다음 날 아침에도 다시 어울려 해장국을 먹기도 하고 사우나를 가기도 했다.

 

사우나 얘기가 나왔으므로 짚어두고 가기로 하자. 한국의 공중 목욕탕 문화는 독특하다. 일본의 목욕탕은 아주 조용하고 물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거기서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모두 벽을 보고 돌아 앉아 샤워만 할 뿐 때를 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입장할 때는 항상 수건으로 치부를 가리고 들어온다. 유럽은 또 정 반대이다. 목욕탕이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시끄러운 편이다. 남녀 혼탕일 경우에도 수건으로 치부를 가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다 들어내 놓고 돌아다닌다. 남녀의 성징에 대해서 아예 관심도 없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아주 몸매가 예쁜 여자가 들어오면 사방에서 뷰티(beauty!! 뷰티(beauty)!! 하며 환호를 지른다. 당사자인 여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맙다고 화답한다.

 

한국의 공중목욕탕은 어떤가. 여탕은 안 가 보아서 모르겠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뮤트가 본 한국 남자 목욕탕 문화는 대충 이렇다. 한국 목욕탕도 조용한 편은 아니다. 노래 부르는 사람부터 체조하는 사람도 있고 몰상식하게 욕탕에서 수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독특한 점은 다른 사람이 욕탕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그 남자의 남성을 일단 한번 째려보고(?), 다음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힐끗 한번 본 다음 머리를 숙여 자기 일을 한다.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고개가 삼각형으로 움직인다. 거기 한번 보고 얼굴 한번 보고 자기 꺼 한번 보고.. 시끄럽다는 데서는 유럽을 닮아있지만 남근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닮아있다.

 

소음의 정도와 성징에 대한 관심사가 목욕탕 문화를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K와 사우나를 같이 갔을 때 그 인간도 목욕탕에서 시끄럽게 굴었다. “오늘은 와 이래 물이 찹노!!”하며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욕탕에 앉아서는 “해임요(형님요)! 거기 물통 항개 욜로 쫌 던져보소.!! 해서 물통을 냅다 던졌더니 벌떡 일어나서 받는 바람에 물이 욕탕 온 사람에게 튀어 불평을 산적도 있었다. 소음에 대한 그의 태도를 말했으므로 이제 남은 한 가지를 더 언급해두기로 하자.

 

K가 역삼각형의 근육질 몸매를 한 것은 목욕탕에서 별로 드물게 보는 편은 아니라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아니다. 그래도 K는 요트로 단련된 스포츠 맨 답게 빼어난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180센티의 키에 딱 벌어진 구리 빛 근육질의 몸매는 남자라면 누구나 동경할 만 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인간의 성징이 남다르게 커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입장할 때 모든 욕객들이 일동 주목하며 그의 성징을 보는 순간 다들 몹시 침울한 얼굴로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도 입장하고 나서 입구에서 이 삼 초간 정지하면서 사방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자신에 주목하고 감탄할 시간을 주고 있었다.

 

욕탕에 들어가 둘이서 마주보며 있을 때 K는 말했다.

“행님요. 있자나요. 어릴 때 동네 애들하고 개울에서 목욕하면요, 애들이 내 고추 크다고 막 놀렸슴미더. 나는 그게 부끄러워 개울에 가서도 혼자 목욕하곤 했슴미더. 웃기지예. 우리 부모는 와 내를 이리 크게 낳았노 하며 부모를 원망한 거 있지예. 하하하하하하하. 명품을 몰라보고 말이징..요즘은 정말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이렇게 흔들고 잘 댕긴다 아임미꺼.. 하하하하. 행님꺼는 쫌 그렇네예..요새 병원가면 금방 해결되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이소..헤헤헤”

 

뮤트는 썩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그 얘기를 듣고 있었고 그 인간이 여러 사람이 욕탕에 있는데도 쩌렁 쩌렁 크게 말했으므로 다른 사람의 표정도 몹시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정력에 대해서도 절륜했던 모양으로 몇 가지 놀라운 사례를 이야기 했지만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이렇게 소탈하고 단순하고 직선적인 K.

이렇게 근육질인 그에게 서정적인 문학을 기대할 수가 있을까.

그 정신 사나운 초월과 비약과 함축미의 서정시를 그가 과연 쓸 수 있을까. 절륜 정력을 자랑하는 그에게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놀랍게도 어느 날 부터인가 그는 그의 홈페이지에 자작시를 올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감정이 아주 잘 정돈된 서정적인 자작시를 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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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트님 평론 도우는 일..

그림 찾고 음악 올리고..

또 자료 보내고 편지 쓰고..

하루 종일하는데도 지치지 않네요.

근데..

청소하는 일은 십분만 하면 지쳐요.

 

집안 일 대충 끝내고 시집을 읽다가..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눈물샘을 모른다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아요.

 

눈물...

눈물은 액체의 기도라고 합니다.

 

이 밤...

조금 슬프졌어요.

이유 없이 눈물이 나네요.

눈물샘이란 단어가

특별히 저에게 와 닿았나봅니다.

뮤트님도 눈물 자주 흘리시나요.

제 눈물샘..

아시나요...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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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고

누구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고

눈을 멀게 하는 것이고

눈을 뜨게 하는 것이고

다 잃고도 다 얻은 것 같은 것이고

다 얻고도 다 잃은 것 같은 것이고

것이고..

것이고..

것이고..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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