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이 머무는 뜰

머나먼 연가(50)-소통의 공백-

뜰에봄 2011. 8. 13. 03:43

 

뮤트는 K에게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아르데미스 여신의 원형이 누군지 아는가. 니므롯이라는 인물을 모르고는 제우스와 아르데미스 여신이 어디서 온 신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게 되지. 구스, 니므롯, 세미라미스를 모르고는 바벨론의 신화, 이집트의 신화, 페니키아의 신화,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리스 신화가 왜 생겼는지 알 지 못하는 법이야. 니므롯 이라는 이름의 뜻하는 바는 “배신하는 자”라는 뜻인데 왜 그런 뜻이 붙었는지 그리고 니므롯의 아내가 세미라미스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담무스인데 그 담무스와 세미라미스가 뭐하는 인간들인지 알 지 못하고는 그리스 신화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를 알 수가 없다네 또 그리스 신화를 모르고는 그리스 철학을 모르고 그리스 철학을 모르고는 학문이 어떤 경로로 생겼는지, 천주교는 어떻게 탄생했는 지를 모르게 된단 말씀이라네. 천주교에 대해 알려면 스콜라철학에 대해서 또 알아야 되고 스콜라 철학을 모르면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게 되지. 경험론과 합리론의 내용을 모르고는 다윈의 진화론이 왜 생겼는지 모르게 되고 다윈의 진화론을 모르고는 대 항해시대, 즉 식민지가 왜 생겼는지를 모르게 되고 또 1, 2차 세계 대전이 어디서부터 촉발되었는지, 자본주의가 왜 생겼는지도 모르게 되는 법이야. 민주주의, 개인주의라는 생소한 문화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라네. 이 모든 것의 시발이 가나안, 구스, 니므롯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하네. 

 

K: 행님은 다 압미꺼....하기사 행님이 모르는게 인나..췟!!

뮤트: 다는 모르네만 꽤 알고 있지.

K: 니므롯인지 뭔지 그 자슥은 도대체 누군데예.

뮤트: 바벨탑이란 말은 들어 본 적 있지? 바로 그 바벨탑을 만든 자야. 그리고 앗수르와 바벨론의 건국시조가 바로 니므롯이야.

K: 우짤라꼬 바벨탑은 만들었는데예. 그리고 그런 짓들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먼데예.

 

뮤트: 자네 말이야. God is now here, 이 문장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신은 여기, 이 순간에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그런데 이 문장에서 W만 슬쩍 옮겨서 here에 붙여 버리면 어떤 뜻이 되는가. God is no where, 즉 “신은 아무데도 없다”로 감쪽같이 둔갑하지 않는가. 니므롯부터 오늘날의 현대 문명까지 역사의 앞 뒤에서 진행된 이 멈출 줄 모르는 작업은 바로 이 W자를 옮겨서 God is no where, 즉 “신은 아무데도 없다”로 만드는 긴긴 작업이었다네. 그것이 지금까지의 세계사였다는 말일세. 그런데 니므롯, 그 니므롯도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네. 

 

K: 시톱!!!!!!! 행님요.. 그만하입시더. 아이고!! 정신 시끄러버라. 내까지 머리가 이상해 질라칸다.. 와!  머리가 어질어질, 뜨끈뜨근하다. 화장실 갔다올테니요. 갔다오면 인자 그 얘기는 고마하입시더. 신이 이러네 저러네 그런 구신같은 소리는 고마하고예 다른 얘기 하입시더..햐..

 

 

 

[창세기 10:6-14]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 (이는 큰 성이라) 을 건축하였으며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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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환타쥐에 대해 연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M선배 마저도 두 사람이 대화창에서 매우 밝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환타쥐가 뮤트에게 경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K가 짓궂은 농담을 할 때에도 환타쥐가 매우 관대하고 밝게 대했고 대화창에서의 K의 태도에서도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두 사람은 그냥 사이버 상의 지인으로서의 그 이상의 것은 없으리라고 속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K는 화면의 뒤에 숨어 환타쥐에 대한 감정을 호감에서 연정으로 감정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한 낌새를 최초로 눈치 챈 사람은 역시 M선배였다. M선배는 평소에 늘 밝은 대화를 하던 두 사람 사이에 어느 날부터 환타쥐가 K를 경원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환타쥐가 K를 경원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K가 들어오면 환타쥐가 사이트에서 나가버리는 상황이 종종 연출되더라는 것이었다. M선배는 오랜 사이버 경험을 통하여 이것은 둘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면 한쪽이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직감했다.

 

 

M선배가 넌지시 K에게 환타쥐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K는 펄쩍 뛰며 부인했다고 했다. “하이고..콧대 높은 환타쥐님이 저 같은 잉간을 안중에나 둘려구요..” 이렇게 너스레를 떨며 절대 그런 감정이 없다고 잡아떼더라는 것이다. M선배가 환타쥐에게 확인했을 때도 그녀는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더라는 것이었다.

 

M선배는 이 일을 뮤트에게 상의해 왔다. 그리고 뮤트가 이 일을 그녀에게 확인해 보았는데, 그 때서야 그녀는 K가 그녀에게 연정을 고백해 왔다고 털어놓았다. 뮤트가 상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혼자 그러다가 말테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 사실은 즉각 M선배에게 알려졌다.

 

 

뮤트는 마침내 그녀에게 왜 그런 사실을 진작 알리지 않았느냐고 짜증을 내게 된다. 뮤트가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좀 이야기 해 주었어야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언잫아 했을 때 그녀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K의 일방적 감정이므로 일고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굳이 알려서 이상한 분위기가 되기 싫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뮤트의 짜증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는 피의자처럼 매우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서 뮤트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일을 뮤트에게 이미 알리고 있었다. 단지 뮤트가 깨닫지 못했을 뿐..그녀와 K의 관계에 대한 암시는 이미 그녀의 이메일 속에 이루어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몇 번에 걸쳐 이미 뮤트에게 K에 관한 일을 넌지시 알리고 있었는데 뮤트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

사랑은 정말 나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매일 매일 깨닫고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에 맞는 남자가 유혹해 와도

제 또래라는 것이 사랑의 메리트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요.

제 또래 남자로부터 받는 유혹이란 것은

또래나 나이가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조건 반사나 학습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이메일을 받아보았을 때 그녀에게 “누가 그렇게 유혹하는데?” 하고 물어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뮤트는 이 편지가 실제 상황을 묘사하는 경험론적 묘사가 아니라 일반적 진리를 논하는 합리론적 묘사로 잘 못 판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메일을 통하여 이미 뮤트에게 누군가가 자꾸 자기에게 자겁을 걸고 있다고 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매일 매일..

 

..........

K, 그 분 뮤트님 말씀대로 진국은 진국인데..

대화창에서 말하다보면 좀 답답한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좀 저돌적이고 단순한 면이 있더군요.

자기가 좋으면 상대도 다 좋은 줄 아나봐요.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좀 문제더만.....

 

 

이 이메일을 좀 신중하게 읽었다면 K가 그녀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뮤트는 환타쥐는 다른 남자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나만 좋아하는 군..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다. "자기가 좋으면 상대도 좋은 줄 안다"는 말은 아주 노골적으로 K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뮤트에게 알리기 위해 직설적으로 쓴 것인데 뮤트는 K의 자의적 판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멍청한 해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K가 그렇게 환타쥐를 좋아하느냐고 당연히 물어보아야할 장면에서 뮤트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 편지는 K가 연정을 고백해 왔고 그녀가 그것을 저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뮤트는 그냥 대화 가운데서 느낀 상대방의 단점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어가 버렸다. 

 

........

춘향의 날카로운 은장도.

남자들이란 은장도를 보면 후퇴할 줄도 알아야되는데..

은장도에 찔려 보아야 뜨거운 맛을 아니..

참 어리석은 동물입니당..

몇 번 말하면 알아먹어야지 원..

나는 성춘향이 아니라 환춘향인데..ㅎㅎ..

.........

 

이 이메일에서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K였었다. 뮤트는 그녀가 가입한 어느 사이트에서 그녀에게 수작을 거는 넘이 있나보군..이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사이버에서는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기에..뮤트는 이 이메일 속의 남자가 K인 것도 모르고 전화에다가 헛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은장도는 자해용 칼이지 공격용 칼이 아니랍니다. 남자가 접근하면 자기 목에다 대고 더 가까이 오면 죽고 말꼬야요..이렇게 세리프가 정해진 칼인데..은장도를 청룡도처럼 쓰려고 하다니..완존 넌센스의 환타쥐님!” 이렇게 히죽거리고 웃으며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 “말해도 알아먹지 못하는 남자가 누구냐?”고 그녀에게 좀 더 꼬치 물어보아야했다. 이 이메일은 K가 그녀가 저어하는데도 계속 접근해 오고 있으며 그녀가 좀 따끔한 거절의 말을 남겼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K로 인해 상당히 불편한 상황에 처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뮤트는 그녀의 그런 이면의 메시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K에 관한 모든 것을 뮤트에게 알리고 있었다.

뮤트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K가 상대가 자기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정보의 공백 상태에 빠져있었다면

뮤트는 상대방이 주는 정보의 해독에 실패하고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소통의 공백상태에 빠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