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아침을 먹고 6,25 참전 터키 용사 위령탑이 있는 한국공원으로 갔다.
위령탑은 우리나라 석가탑 비슷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3년 지어준 거라고 한다.
부산의 유엔 묘지에 터어키 병사들의 안장되어있는 흙을 파다가 조성한 공원이다.
터어키는1950년 한국전쟁 발발후 1만5천명을 파병하였는데 대부분 지원자였단다.
그 중 죽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이 삼천 여명이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한국공원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방문하여
관리비를 지원약속하였고 한국전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터키가 우리와 가까운 이유는 그들이 돌궐이기 때문입니다. 돌궐을 백인들이 발음한 것이 투르크였고 투르크의 영어식 발음이 터키이지요.
돌궐은 고조선,고구려,발해 때부터 우리와는 같은 나라를 이루고 있던 부족연맹이었습니다. 고구려 발해가 망하고 돌궐이 독자적으로 행동해서 아랍으로 쳐 들어가 세운 나라가 투르크였지요. ㅡ> 인터넷 자료
그런데 가이드가 말한 <형제의 나라> 의미는 달랐다.
터키인은 혈연을 중시하고 사후 뭍인 장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터키인들은 이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 뭍인 한국땅을
그들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함께하는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터키는 우리를 기억한다.
하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우리는 어떠한가? 한번 되짚어 볼 일인 듯하다.
한국참전토이기기념탑 양쪽엔 한국국기와 터키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 여행객들은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기념탑 앞에서 묵념을 했다.
돌에 새겨진 전사자의 나이를 따져보니 거의가 스물 한 두살, 꽃다운 나이이다.
대부분 자발적인 지원이었다는데 무엇이 그들을 그 머나먼 나라 전장터로 이끌었을까?
토오기 용사 흙이 담긴 석관위에 태극기 모양으로 꽂은 헌화가 놓여있었다.
앙카라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만에 다다른 곳은 소금호수였다. 원래는 바다였는데 호수가 되었단다.
얼음처럼 보이는 바닥이 실은 소금으로 뒤덮힌 거다.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는데 어느 사진작가가 작품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가져다 놓은 듯..
저 의자에 지우당과 같이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치 첫눈을 밟는 연인같다. 여자가 엄청 신 나 하느만. ㅎㅎ
이게 소금을 꿰어 만든 발이다. 어째 녹지않나 몰라.
소금호수를 보고나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지나니 창밖으로 보랏빛 주단이 펼쳐져 있었다.
들판너머로 보이는 흰색도, 보라색도 다 바다이다.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바다물 색깔이 보라색으로도 보이고, 초록색으로도 변한다고 한다. 참 희안도 하지.
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로 향해 가는 길 옆의 풍경이 평화롭다.
밀밭과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데린구유 입구.
데린구유 지하도시는 지하 20층까지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무슬림의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카파도키아에는 200여개의 지하도시가 있었다고 한다.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깊이 85 미터의 지하도시로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미로 같은 연결통로를 중심으로
수많은 주거지와 교회, 저장고, 가축우리를 비롯하여 지상으로 연결되는 환기구와 지하 8층 이하에서 길어 올리는 우물까지 파 놓았다.
오랜 기간 동안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완벽한 지하도시이며 최대 3만 명까지도 생활할 수 있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데린구유는 마을사람들이 구멍속으로 사라진 닭을 쫒다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누가 침범하면 우리나라 연자맷돌처럼 생긴 저 돌로 동굴을 막았다고 한다. 군데군데 몇 개나 있었다.
미로같은 좁은 통로를 지나면 넓은 공간이 펼쳐지곤 했다.
제법 넓은 공간인 걸 보면 여기는 회합장소였던 듯...
바깥에는 여러가지 물건을 진열해놓고 파는 상점이 있었다.
저 집은 골동품을 파는 듯...우리나라에서 숯불을 넣고 사용하던 다리미 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네.
국수밀듯 밀어서 굽는 빵.
터키 전통인형인 듯..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지하 동굴식당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정말 허접했는데 여기가 정말 동굴식당인가 싶을만큼 실내가 정말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그날 점심 메뉴는 항아리케밥이었는데 저 항아리에 재료를 넣고 위에는 밀가루반죽으로 봉한 뒤 네 시간동안 가열한다고 했다.
카파토키아 우치사르 비둘기 계곡
우치히사르 성채.
우치히사르는 뽀족한 바위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저곳에 직접 가지는 못하고 어느 휴게소에서 건너다 보았다.
로마시대 종교박해를 피해 온 그리스도 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라한다. 성채주변에는 비둘기를 키우던 구멍과
비둘기의 주의를 끌기 위해 하얀 창틀이며 다양한 문양을 페인트칠까지 해 놓았다한다.(일면 비둘기 계곡이라고도 한다)
비둘기를 키워서 그 배설물을 모아 포도밭의 거름으로 사용했단다.
이 곳의 기괴한 모습의 바위들은 화산 분화에 의한 화산재와 용암등이 오랜 세월을 거쳐 비, 바람, 눈, 강물등에 의해
침식당했고, 또한 지진까지 겪으면서 생성되었다고 한다.
괴레메 국립공원이 있는 카파도키아에는 이미 B.C. 20세기에 아시리아인이 식민도시를 건설하였고,
B.C. 17세기∼B.C. 12세기에는 히타이트 왕국의 지배하에서 교역의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4세기 초 크리트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교인들이 이 계곡으로 숨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발견된 교회만도 천 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니 그들의 신앙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듯하다.
우리도 기념사진 한 장 찍어야재. 같이 오길 참 잘 했어, 그쟈?
정조준 자세 나온다. 꼼짝마라다.
파샤바으 (파샤바)계곡 ( 파샤바으는 터키 말로 '장군의 포도밭') 이란 뜻이란다.
버섯바위 뒤쪽에서 개구장이 스머프들이 튀어 나올 것다
상대방이 나를 겨누는데 나라고 마주 못 겨누랴. ㅋ
동굴교회 입구
사진 속 주인공 아저씨는 반대편에 기대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한테 사진은 이 자리에 이렇게
포즈를 취하고 찍어야 한다고 조언까지 해 주더라는...
낙타바위
신혼부부가 웨딩촬영을 하는데 사진사가 엄청 주문이 많았다.
햇볕은 뜨거운데 저 신혼부부 사진사 주문대로 포즈취하느라 땀께나 흘렸을게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갈 때는 채 지지 않은 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얼마나 크고 아름답던지...정말 감동적이었다. 열기구를 타고 그 달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했는데 기대는 금세 져 버렸다.
열기구에는 사람이 스무명도 넘게 타는데 타는 값이 170 유로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25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열기구를 타고 바라보는 일출광경이 장엄이다.
열기구는 오르락 내리락 하며 계곡의 바위가 닿을 듯한 스릴을 맛보게도 한다.
이곳이 스타워즈 영화 촬영지였단다. 정말 별천지 같다.
어느 외계에 닿는 듯한 느낌.
밀밭 한 켠에 착륙하여 와인을 나누며 무사착륙을 자축했다.
네모 난 통은 각자 성의껏 성금(?)을 넣는 용도이다.
우리 식구들도 1달러씩 넣었다.
단체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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